금상첨루 (錦上添淚) - 비단 위에 눈물을 떨구다

초여름 오후의 햇빛은 찬란하여 길을 따라 심어놓은 치자나무의 꽃송이가 더욱 하얗게 빛났고 가볍게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그 향기가 달콤하였다. 이 계절에는 영화성(榮華城)이 유독 아름다워 보였으므로, 영화성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은 비록 맡은 일이 고되었으나 얼굴이 밝았다. 머리를 단정하고 소박하게 틀어 올린 내관(內官)들은 부지런히 걸음을 옮기다가도 작게 ...

해는 완전히 저물어 하늘은 검게 물들었고, 잠시 그쳤던 눈이 다시 내리기 시작하였다. 평강전(平康殿)을 지키던 사람들은 의황귀비(懿皇貴妃)의 명으로 이미 모두 눈을 붙이러 물러갔으니, 그 주변은 텅 비어있었다. 오직 흔들리는 촛불만이 호화로운 침상에 누워 죽어가는 황제와 그 검푸른 얼굴을 내려다보는 의황귀비를 희미하게 비추고 있었다.

겨울의 해는 이토록 짧으니, 빠르게 어두워지는 하늘은 붉고 푸르게 물들어 있었다. 사그라드는 노을에 눈이 쌓인 영화성(榮華城)의 모든 지붕들이 희미하게 빛나고, 황제가 죽어가는 평강전(平康殿)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의황귀비(懿皇貴妃)의 숨결은 허공에 하얗게 번졌다.

평강전(平康殿) 내실(內室)의 호화로운 침상에 누워있던 황제는 힘겹게 눈을 떴다. 분명 황제를 위하여 화국대사의(華國大師醫)와 화국부사의(華國副師醫)가 번갈아 탕약을 올렸으나, 황제는 여전히 누군가 자신의 심장을 꽉 움켜쥐고 있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눈이 잠시 그친 오후에 경충국공(炅忠國公)이 순의궁(順懿宮)으로 들어서니, 의황귀비(懿皇貴妃)와 현왕(賢王)이 자리에 앉아있었다. 경충국공이 몸을 굽혀 예를 올리자, 의황귀비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맞은편에 놓인 의자에 앉을 것을 권하였다.

막 동이 트기 시작할 무렵, 장용(長用) 성길(省拮)이 평강전(平康殿) 내실(內室)을 살피러 들어갔다 바닥에 쓰러진 황제를 발견하여 급히 화국대사의(華國大師醫)와 화국부사의(華國副師醫)를 불렀다. 황제의 상태가 심각한 것을 본 두 의관(醫官)은 모든 지식과 의술을 동원하여 황제를 치료하려 애를 썼으나, 황제는 간신히 의식을 되찾았을 뿐 몸을 일으키지 못하였...

화천 이십육 년의 겨울에 소리도 없이 눈이 계속 내리니, 날이 밝으면 영화성(榮華城)의 모든 지붕이 옅은 햇빛을 받아 창백하게 빛나고 있었다. 밤새 쌓인 눈을 쓸어내리던 노용(努用)들은 종종 넋을 잃고 겨울 아침의 고요한 설경(雪景)을 바라보다 매서운 바람에 몸을 움츠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계절이 바뀌어 연못에 가득 피어있던 붉은 연꽃은 모두 시들었으나 의황귀비(懿皇貴妃)는 장사(長使) 아실(娥實)을 데리고 조금 쓸쓸해진 화원(花園)으로 갔다. 바람이 불어 연못에 희미한 물결이 새겨질 때, 의황귀비가 연못 위에 놓인 돌다리 위에서 걸음을 멈추고 생각에 잠기니 검은 비단에 하얀 연꽃 송이를 수놓은 겉옷(袍)이 너울거렸다.

황제의 장용(長用) 성길(省拮)이 평강전(平康殿)으로 돌아와 자리에 앉아있는 황제의 발 앞에 몸을 굽혀 예를 올렸지만, 글씨를 쓰기 위해 붓을 고르던 황제는 성길을 바라보지도 않은 채 하문(下問)하였다.

경덕궁(慶德宮)은 여전히 화려하였지만 그 주인이 세상을 떠난 지가 오래되어 곳곳에 짙은 적막함이 배어있었다. 경화귀비(璥花貴妃)의 장사(長使)였던 여화(如花)는 생모(生母)의 궁(宮)을 찾아온 경충국공(炅忠國公)의 발 앞에 몸을 굽혀서 예를 올렸다.

화천 이십 년에 조국(晁國)에서 새로 즉위한 신양왕(伸陽王)이 화국(華國)으로 왔다. 마침 신양왕은 매우 젊고 아직 혼인을 하지 않았으므로, 황제는 조국과의 화친(和親)을 위하여 경화귀비(璥花貴妃) 소생(所生)의 경선제희(璥璿帝姬) 승경(承璥)을 신양왕의 적배(嫡配)로 하가(下嫁)하였다.

황제가 평강전(平康殿)으로 돌아와 자리에 앉으니, 장용(長用) 성길(省拮)이 황제의 발 앞에 몸을 굽혀 예를 올렸다. 황제는 성길을 내려다보며 하문(下問)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