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화국(華國)의 절기(節氣)로 입춘(入春)이었다. 장시(長侍) 오손(五遜)이 환기를 위하여 창문을 열고 있을 때, 자리에 앉아서 오래된 시집(詩集)을 읽던 서원친주(瑞元親主)는 햇빛에 희미한 온기가 도는 것을 보았다. 이에 서원친주가 손에 쥐었던 시집을 정돈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니, 오손은 곧바로 서원친주에게 비췻빛 방풍의(防風衣)를 둘러주었다.
철경 십삼 년에 영서왕비(玲瑞王妃)가 병(病)으로 훙거(薨去)하였으니, 광덕성(廣德城)에는 조종(弔鐘)이 울리고 뭇사람들은 흰옷을 입었다. 자인궁(慈仁宮)의 흉사(凶事)를 두고 한없이 애통해하던 철경왕(哲炅王)은 자신의 중궁(中宮)에게 영서의왕비(玲瑞宜王妃)의 시호(諡號)를 내리고 식음(食飮)을 전폐(全廢)하였다. 사람들의 근심과 권유를 모두 물린 채 밤낮...
철경왕(哲炅王)의 명을 받든 일등국의(一等國醫)가 영서왕비(玲瑞王妃)의 병세(病勢)를 살피고 영왕녀(榮王妃)가 모비(母妃)의 침상 곁을 지키었으나, 영서왕비는 겨울이 지나도록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였다. 이에 불길한 예감에 휩싸인 철경왕은 매일 자인궁(慈仁宮)으로 찾아가 자신의 중궁(中宮)을 마주하였다. 하여 영서왕비는 철경왕이 자신의 손을 꼭 붙잡을 때마...
철경왕(哲炅王)이 영화성(榮華城)에 서신(書信)을 보내어 영서왕비(玲瑞王妃)의 병세(病勢)를 전하였으므로, 안 그래도 자신의 딸을 그리워하던 서온황태후(瑞穩皇太后)는 소식을 듣자마자 한없이 깊은 고통과 두려움에 시달리게 되었다. 결국 괴로움을 견디지 못한 태후(太后)가 날마다 강녕전(康寧殿)에서 향(香)을 올리고 바닥에 몸을 굽히며 영서왕비의 쾌유(快癒)를...
철경왕(哲炅王)이 자인궁(慈仁宮)으로 들어섰을 때, 영왕녀(榮王女)는 이등국의(二等國醫)가 영서왕비(玲瑞王妃)의 몸에 침(針)을 사용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인기척에 고개를 돌린 영왕녀는 철경왕을 보자마자 몸을 굽히고 예를 올리었다. 이에 철경왕은 추위에 뻣뻣해진 손으로 자신의 적장녀(嫡長女)를 일으켰다.
자신의 여식(女息)과 손녀를 마주하기를 바랐던 서온황태후(瑞穩皇太后)가 광덕성(廣德城)으로 서신(書信)을 보내어 영서왕비(玲瑞王妃)의 요양(療養)을 청하였으나, 철경왕(哲炅王)은 영왕녀(榮王女)가 가례(嘉禮)를 올릴 때 영서왕비가 예식(禮式)을 지켜보아야 한다는 이유를 들어 서온황태후의 간곡한 청을 거절하였다. 이에 서온황태후는 영화성(榮華城)에 당도(當到...
영탄 이십사 년의 섣달이 끝나기 전에, 영탄제(令坦帝)가 기력을 되찾지 못하고 붕어(崩御)하였으므로 영화성(榮華城)에는 조종(弔鐘)이 울렸다. 이에 사람들은 나라에 큰 상(喪)이 있는 것을 깨닫고 흰옷을 입었다.
영탄제(令坦帝)는 병석(病席)에 자리한 중에도 날마다 평강전(平康殿)으로 우왕(祐王)을 불러 조정(朝廷)의 일들을 자세히 고하도록 하였다. 이처럼 영탄제가 끝없이 자신의 차자(次子)를 시험하므로, 침상 가까이 나아가 몸을 굽히던 우왕은 황제의 날카로운 시선이 버거웠다. 그러나 감히 영탄제의 심기를 거스를 수 없었던 우왕은 공손히 고개를 조아리며 나랏일을 고...
짙푸른 하늘 아래에 놓인 영화성(榮華城)의 황금빛 지붕은 여전히 찬란하였으나, 한낮의 햇빛에는 벌써 냉기가 돌고 있었다. 나뭇가지 끝에서 붉게 물든 잎사귀가 싸늘한 바람에 흩어지니, 영탄 이십사 년의 가을이 깊어가고 있었다. 이날 영서왕비(玲瑞王妃)의 서신(書信)이 안강궁(安康宮)에 당도(當到)하였으므로, 자리에 기대어 한숨을 돌리던 서온황후(瑞穩皇后)는 ...
희경귀비(禧倞貴妃)와 기경왕(祺勍王)과 조관귀비(祚寬貴妃)가 갑자기 훙서(薨逝)한 뒤에, 영탄제(令坦帝)는 조국(晁國)으로 서신(書信)을 보내어 통혼(通婚)의 뜻을 전하였다. 마침 화국(華國)과 무국(茂國)의 화친(和親)을 두고 근심하였던 단문왕(旦文王)이 답신(答信)을 보내어 통혼에 응하였으니, 영탄제는 순혜장제희(順惠長帝姬) 소생(所生)의 숙장희주(淑長...
화국(華國)의 사신(使臣)들이 무국(茂國)을 떠난 이후로, 외인관(外人官)에 혼자 남은 부관(副官) 저서진(雎誓進)씨는 무국의 제사(祭祀)나 예식(禮式) 등에 참석할 때마다 철경왕(哲炅王)의 언행(言行)을 자세히 살피어 보았다. 그러한 자리에는 언제나 영서왕비(玲瑞王妃)가 철경왕의 곁을 지키고 있었으며, 영서왕비를 향한 철경왕의 태도가 매우 정성스러웠으므로...
영서왕비(玲瑞王妃)가 영왕녀(榮王女)를 비롯한 왕손(王孫)들과 정왕빈(精王嬪)을 비롯한 왕빈(王嬪)들을 돌보는 것에 전념할 때, 철경왕(哲炅王)은 자인궁(慈仁宮)에 자주 발걸음하였다. 귓가에 울리는 목소리는 한결같이 나지막하고 다정하였으나, 영서왕비(玲瑞王妃)는 철경왕의 부드러운 성안(聖顔)에 허기가 감도는 것을 볼 때마다 가슴이 짓눌리고 쓰라렸다. 옅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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