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 희녕제희(嬉寧帝姬)가 병문안을 위하여 경왕부(慶王府)로 찾아가니, 경왕(慶王)은 자신의 이복누이를 내실(內室)로 맞이하였다. 이윽고 걸음을 멈춘 희녕제희가 경왕을 향하여 몸을 굽히자, 경왕은 곧바로 손을 뻗어서 희녕제희를 붙잡았다. 희녕제희의 근심과 달리 경왕은 침상에 누워있지 않았으나, 그 모습은 밤새 내리는 눈을 맞아 새하얗게 얼어붙은 석상(石像...
온왕후(穩王后)가 화국대사의(華國大師醫)를 이끌고 입성(入城)하였던 날 이후, 성호제(惺顥帝)는 경왕(慶王)의 상소(上疏)에 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몇 날 며칠이나 정양(靜養)에 전념하던 경왕이 또다른 상소를 올리었으므로, 또다시 온왕후와 마주한 성호제는 자신의 질녀(姪女)이자 며느리를 매섭게 쏘아보며 이를 갈았다. 이처럼 경왕이 영광(榮光)을 포기하여...
그날 이후로, 경왕(慶王)은 신열(身熱)이 올라 몇 날 며칠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였다. 온왕후(穩王后)가 병상(病床) 옆을 지킨 끝에 경왕의 병세(病勢)는 천천히 가라앉았으나, 정작 경왕은 무섭게 끓어오르던 열이 내린 뒤에 곡기(穀氣)를 완전히 끊어버렸다. 이에 경왕부(慶王府)의 사람들은 깊은 불안함에 휩싸였으며, 부군(夫君)에게 드리워진 그림자가 떠오...
경왕(慶王)이 중병(重病)으로 인하여 영화성(榮華城)에 발을 들이지 못할 때, 건호국공(虔護國公)은 황명(皇命)에 따라 예경처(禮敬處)의 일을 돕게 되었다. 다만 건호국공은 성호제(惺顥帝)의 심기가 매우 불편한 것을 알았으므로 이미 한껏 낮추었던 몸이 더욱 움츠러들었다. 게다가 이 즈음에는 성호제가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잦았으므로, 오랫동안 황제의 곁을 지...
경왕(慶王)이 쓰러지자마자 부(府)를 뛰쳐나간 장시(長侍) 손보(遜步)가 의원(醫員)을 데리고 돌아왔을 때, 온왕후(穩王后)는 경왕의 침상 옆을 지키고 있었다. 내실(內室) 앞에서 손보가 고하는 소리가 들리자, 온왕후는 즉시 의원의 출입을 허락하고 경왕을 진찰하도록 명하였다. 이에 의원은 온왕후가 몇 걸음 물러서자마자 경왕의 맥(脈)을 자세히 살피었다. 의...
안신보국공(安信保國公)의 장례가 끝나고 다시 날이 밝자, 성호 이십오 년의 정월대보름(元宵節)이 되었다. 이른 아침부터 잿빛 구름이 하늘에 드리워지므로, 햇빛마저 숨어버린 허공에는 새하얀 눈송이가 지전(紙錢)처럼 서글프게 흩날리고 있었다. 싸늘하고 무거운 침묵 속에서 영화성(榮華城)의 모든 길이 정돈되었을 때, 성호제(惺顥帝)는 비통함에 젖은 채로 흰옷을 ...
흉사(凶事)의 기록을 모두 확인한 안보국공(安保國公)이 몸을 굽히고 바닥에 엎드리자, 성호제(惺顥帝)는 자신의 육남(六男)이 눈물조차 흘리지 못하는 모습을 무정하게 내려다보았다. 이처럼 안보국공은 진상(眞相)을 확인하였으나, 제 동복형님의 과오(過誤)와 악행(惡行)을 두고 절망하였으니 그 괴로움에 다른 이야기를 덧붙일 필요가 없었을 터였다. 그러나 황제의 ...
예경처(禮敬處)에서 물러 나온 안보국공(安保國公)은 도서처(圖書處)로 돌아오자마자 힘없이 자리에 앉았다. 여전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안보국공이 넋을 놓으므로, 제 주인의 안색(顔色)을 살피던 장시(長侍) 우수(右手)는 어찌할 바를 몰라 고개를 조아릴 뿐이었다. 조심스럽게 안보국공을 살피던 우수가 안동흑차(安冬黑茶)를 올리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안보국공...
영화성(榮華城)의 동문(東門)을 나선 경왕(慶王)이 부(府)에 도착한 것은 사방이 어둠에 잠긴 뒤였다. 부국공(富國公)과 왕희(王姬)가 일찍 잠든 것을 확인한 온왕후(穩王后)가 정원으로 나아가 부군(夫君)을 맞이하였으므로, 경왕은 곧바로 온왕후에게 자신의 방풍의(防風衣)를 둘러준 뒤에 함께 내각(內閣)으로 향하였다. 온왕후의 안배(按排)에 따라 내각에는 이...
성호 이십사 년의 섣달이 끝나갈 때, 화경(華京)에는 몇몇 불길한 소문이 돌았다. 그 소문들은 하나같이 지나간 흉사(凶事)에 관한 것이었으며, 경왕(慶王)을 배후(背後)로 지목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경왕이 후사(後嗣)를 위하여 의인공왕후(宜仁功王后)를 독살하고, 누명을 쓴 각의보국공(恪儀保國公)과 진상을 눈치챈 정양충국공(靖良忠國公)의 목숨을 빼앗았다는 것...
해가 진 뒤에도 장시(長侍) 조목(助目)이 돌아오지 않으므로, 이를 괴이하게 여긴 숙충국공부인(淑忠國公夫人)은 위시(衛侍) 몇 명을 보내어 조목을 찾도록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밤새 조목을 찾지 못하다가 날이 밝은 뒤에야 정양충국공부(靖良忠國公府)로부터 삼리(三里) 가량 떨어진 우물에 시체가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위시들이 조목의 시신을 급히 수...
성호 이십사 년의 중양절(重陽節)이 지나간 뒤에, 안보국공 청옥탁 진기 (安保國公 靑玉琢 臻玘) 는 성호제(惺顥帝)의 성지(聖旨)와 순비(純妃)의 권유에 따라 몇 년이나 미루었던 가례(嘉禮)를 올리었다. 안보국공의 적배(嫡配)가 된 이는 정양충국공(靖良忠國公)의 적배인 숙충국공부인 홍옥탁 사민 (淑忠國公夫人 紅玉琢 詞敏) 의 육촌동생이었으며, 성호제(惺顥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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