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희(王姬)를 무사히 생산한 온왕후(穩王后)가 경왕부(慶王府)에서 산욕기(産褥期)를 보내는 동안에, 성호제(惺顥帝)는 나라에 경사(慶事)가 있는 것을 들어 연귀비(娟貴妃)를 황귀비(皇貴妃)로 세우고 순귀빈(純貴嬪)과 정빈(貞嬪)을 비(妃)와 귀빈(貴嬪)으로 봉하였다. 이는 계후(繼后)마저 사라진 동서(東西) 육궁(六宮)의 안정을 위한 것이었으나, 혼란은 위...
성호 이십사 년의 여름이 깊어갈 즈음에 온왕후(穩王后)는 무사히 딸을 낳았고, 산통(産痛)이 이어지는 내내 초조해하던 경왕(慶王)은 자신의 배필과 아이가 무탈한 것에 안도하였다. 아이가 아직 복중(腹中)에 있을 때 경왕과 온왕후는 아이의 이름을 두고 고민하다 아들에게는 경(慶)이나 정(整)을 사용하고 딸에게는 온(穩)이나 희(憘)을 붙이기로 하였으로, 그들...
그로부터 보름 가량이 지난 이른 아침에, 신행헌(愼行軒)의 장용(長用) 일언(一言)은 사람들에게 분부하여 내각(內閣)에 조반(朝飯)을 차리고 신보국공(愼保國公)을 모시기 위하여 내실(內室)로 향하였다. 위영공황후(褘瑩恭皇后)의 장례가 끝난 후에 신보국공이 평강전(平康殿)으로 찾아가 간청을 올렸으므로, 성호제(惺顥帝)는 자신의 오남(五男)이 모후(母后)를 애...
그날 이후로, 위영황후(褘瑩皇后)는 무섭게 앓기 시작하였다. 이에 신보국공(愼保國公)이 안강궁(安康宮)으로 달려가 모후(母后)의 병시중을 들었으나, 신열(身熱)이 올라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던 위영황후는 신보국공의 앞에서 비명을 지르고 울부짖을 뿐이었다. 이처럼 위영황후가 고통과 분노와 공포에 휩싸인 채 병상(病床)에 누웠으므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신보...
각의보국공(恪儀保國公)과 정양충국공(靖良忠國公)의 장례가 끝난 뒤에, 성호제(惺顥帝)는 안강궁(安康宮)을 새롭게 단장하라 명하였다. 원년(元年)에 현의공황후(賢懿恭皇后)가 붕어(崩御)한 이후로, 안강궁은 황명(皇命)에 따라 정결함을 잃지 않되 현의공황후가 생전에 머무르던 모습으로 남아있었다. 하여 영화성(榮華城)의 사람들은 성호제가 아들을 잃은 위황귀비(褘...
정월대보름(元宵節)의 다연(茶宴)이 어그러진 이후로, 각보국공(恪保國公)은 병상(病床)에서 정신을 차렸다 도로 까무러치기를 반복하였다. 어느 때에는 코끝에 탕약 냄새가 진동하였으며 또 어느 때에는 온몸이 진땀으로 푹 젖어있었으로, 각보국공은 자신이 목숨을 잃지 않은 것에 안도하는 중에도 고통과 두려움과 분노에 짓눌리고 있었다. 하여 각보국공은 날마다 자리에...
중양절(重陽節)이 지나가자 해는 더욱 빠르게 저물고 허공에는 냉기가 감돌았다. 높고 짙푸른 하늘 아래에서 울긋불긋하게 물들던 잎사귀들은 서리를 맞자 그 색을 잃고 바닥으로 흩어졌다. 이처럼 가을이 지나가고 겨울로 접어드는 동안에, 영화성(榮華城)의 사람들은 심신이 움츠러들었고 그것은 위황귀비(褘皇貴妃) 또한 마찬가지였다. 병상(病床)에서 일어난 뒤에도 몸이...
영화성(榮華城)에서 물러 나와 자신의 부(府)로 돌아온 각보국공(恪保國公)은 참수(斬首)된 언각(言恪)을 대신하여 장시(長侍)가 된 일손(一遜)에게 석반(夕飯)을 차리라 명하였다. 그동안 각보국공은 입맛을 잃었던 탓에 종종 식사하기를 꺼려하였으므로, 일손은 명을 받들자마자 내각(內閣)에 상을 차리고 순보국공부인(順保國公夫人)을 자리로 모시었다. 이윽고 상 ...
위황귀비(褘皇貴妃)가 병상(病床)에서 속을 끓이는 동안에, 신보국공(愼保國公)은 조용히 기록처(記錄處)로 찾아갔다. 이에 정충국공(靖忠國公)은 의문을 잠시 억누르고 이복아우에게 심향홍차(深香紅茶)를 건네었다. 그러나 신보국공은 정충국공이 불안에 휩싸이거나 말거나 공손히 예를 표하고 찻잔을 비울 뿐이었으므로, 이를 참다못한 정충국공은 최대한 차분하게 입을 열...
무릇 시간의 흐름은 사람의 마음을 돌아보지 않는 법이었으니, 오랫동안 과거에 짓눌려 있었던 온왕후(穩王后)는 자신의 양자(養子)가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것을 본 뒤에야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였다. 부국공(富國公)의 얼굴은 의인공왕후(宜仁功王后)를 닮았으나 현강성왕(賢康聖王)을 닮기도 하였으므로, 온왕후는 처음으로 부국공을 보았을 때 기쁘기도 하였고 고통스럽기...
연귀비(娟貴妃)가 언질하였던 대로, 성호제(惺顥帝)는 성호 이십 년의 삼진일(三辰日)에 경군(慶君)을 왕(王)으로 세웠다. 이에 위황귀비(褘皇貴妃)는 병상(病床)에서 누운 채로 더욱 속을 끓였으며, 영화성(榮華城)의 사람들은 성호제가 경왕(慶王)에 대한 미움을 정말로 거두었다 여기었다. 그러나 경왕은 성호제가 증오를 억누른 채 삼남(三男)의 쓸모를 가늠하고...
정충국공(靖忠國公)이 짐작하였던 대로, 성호제(惺顥帝)는 소은장제희(昭誾長帝姬)를 평강전(平康殿)으로 부르고 부국공(富國公)을 경군(慶君)의 양자(養子)로 삼으라 권하였다. 의인공왕후(宜仁功王后)의 훙서(薨逝) 이후로 부국공을 돌보던 소은장제희는 조모(祖母)보다는 이모(姨母)가 아이를 돌보는 것이 낫다 여기었으므로, 곧바로 몸을 굽히고 황은(皇恩)에 깊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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